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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9일 토요일

눈을 감아도 - 4


처음 소풍 가던 느낌이 이랬을까? 밤새 찾아온 설레임에 뛰는 가슴을 붙잡느냐고 새벽이 되서야 늦은 잠을 청하였다. 하지만 알람을 맞춰둔 시간보다 30분 먼저 눈이 떠진 나는 혹시 간밤에 그녀의 연락이 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집어 들어서 확인해 보았다. 특별한 메세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남은 30분을 좀 더 잠을 자볼까하는 마음에 다시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30분이 이렇게 길었던가?'


왠지 울려야할 자명종 시계의 알람이 울리지 않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냥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문득 핸드폰의 진동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떠서 핸드폰을 집어 들고 메세지를 확인하였다.


"오늘 3시에봐^^"


그녀의 메세지가 도착해있었다. 나는 메세지를 바라보며 잠시 미소짓다가 문득 시계를 바라 보았다. 벌써 1시 30분이었다. 오다말다 하던 잠이 싹다 달아나버렸다. 이러다가 그녀와의 약속시간에 늦을 것이라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서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 갔다. 급하게 세안을 하고 머리를 감고 양치를 한 다음에 수건을 머리에 얹고 연신 문지르며 닦아내다가 문득 바라본 거울에 턱과 입주위의 수염이 듬성듬성 자라있는 것을 보고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서 면도크림을 바르고 면도를 하였다.


한손으로는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한손으로는 옷가지를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당장하고 있는 일보다는 이 일들이 끝나면 무엇을 할지를 연신 생각을 했다. 조금이라도 더 늦다가는 지각을 하겠다는 생각은 나의 손발을 더욱 분주하게 만들었다. 대충 머리를 말리고 옷가지를 다 입고 로션을 바르려고 거울을 보는 순간 대충 말린 머리가 엉망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얼른 빗과 왁스를 머리에 바르며 평소의 헤어스타일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머리를 만지면 만질 수록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분명 나 스스로는 인물이 그리 혐오스럽지는 않게 생겼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왠지 작은 부분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굴은 조금 부운것 같았고, 입술이 약간 튼것이 침을 바른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아보였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내 눈섭과 눈섭 사이에 조금씩 털이 자라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서 면도기로 눈섭사이를 정리를 하였다. 그리고 튼 입술에 조금은 찝찝하지만 로션을 바르며 트는 것을 진정 시켰다. 눈섭 사이를 정리하면서 머리 스타일을 바라보니 지금이라도 당장 미용실에가서 머리를 정리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나는 머리를 이리 저리 넘겨보다가 평소의 머리 스타일로 다시 정리한 다음 입고 있는 옷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입은 니트가 이렇게 답답해 보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연극을 보러 가는 것인데 조금은 격식있어보이고 깔끔하게 가야되는 것을 아닐까? 라는 생각에 급히 방으로 뛰어들어가서 이래저리 옷가지들을 살펴보았다. 어떻게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도 않았던 옷가지들이 이렇게 볼품이 없을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그 중에 하얀색 셔츠가 가장 무난한 것 같아서 니트를 벗고 셔츠륻 다시 입고 거울을 바라 보았다. 하얀색 셔츠를 입었음에도 조금 답답해 보이자 팔을 걷고 거울을 다시한번 바라보며 나를 바라보았다.


도무지 내가 뭘하고 있는거지?


나는 검은색 가죽을 된 시계를 왼손에 차며 현재 시간을 바라보았다. 2시 5분이 막지나고 있는 시계에 초침을 붙잡아두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뛰어 나가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서 목표지점인 연극극장 앞까지는 40~ 50분이 걸렸다.


인생 일대의 지각이 눈앞에 있다.


나는 현관문 앞에서 다시한번 멈춰섰다. 평소에 신던 운동화를 한짝을 신다가 보니 당장 급한 것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신발장을 열어서 대학교 입학할 때에 샀던 갈색 클래식 구두를 꺼내어 신고 이리저리 살펴 본다음 현관 문을 나섰다. 급히 엘리베이터로 달려가서 내려가기 버튼을 연신 누르며 1층부터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렇게나 우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느린지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낮은 층에 살면 엘리베이터를 못 탄다고 싫어서 17층으로 방을 구했는데 지금 그렇게 후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가 4층에서 한번 7층에서 한번 8층에서 한번 10층에서 한번 14층에서 한번 멈춰서는 것인가? 게다가 내가 서있는 17층을 지나서 20층에서 엘리베이터가 한번 더 멈추더니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1시간 같은 2분 3분이 지나서야 내려와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안에는 어떤 아주머니가 쌀자루를 두개씩이나 엘리베이터 한가운데에 새워두고 벽에 기대어 계셨다. 다행히 내려가는 동안에는 다른 층에서 걸리지 않았지만 1층에 도달하였을 때였다. 벽에 기대고 있던 아주머니가 총각 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불러 새웠다.


"총각 미안한데 경비실 앞까지 하나만 들어주지 않겠어요?"


과연 이것이 도덕적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아니면 바른 생활 등등에서 이웃을 도아 주는 것을 실천하는 덕목 중에 반드시 나온다는 예문 중에 중요 예문이 아닌가? 만약 여기서 무시하고 지나간다는 답을 선택하였다면 분명 나의 도덕 점수는 낙제점을 면치 못하였을 것이다. 바빠서 죽겠는데 이제는 쌀자루까지 들어다 옮겨야할 상황이 원망스러웠지만 나는 살짝 억지 미소를 지으며 쌀자루를 들고 경비실 앞에 다가갈 무렵 아주머니가 나를 앞질러서 쌀자루를 매고 한 50미터 되는 지점의 자동차까지 들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경비실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그녀를 따라서 쌀자루를 들고 달려서 아주머니가 서있는 차 앞에 내려놓았다.


"어이구, 고마워요. 총각."


왠지 모르게 달콤하지 못한 칭찬을 들은 나는 머슥한 미소를 지으며 재빠르게 뛰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버스 정류장이었다. 하필 지하철까지 가는 버스는 아파트 단지 밑에 있는 정류장에서만 가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온몸에 땀이 날정도로 달렸고 가쁜 숨을 고르며 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약속시간 50분 전.

 어떻게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나오는 데에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건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버스가 내 앞에서 멈췄다. 버스에 올라타서 20분을 가면 지하철이었다. 벌써부터 피곤한 마음에 앉을 자리를 찾아보려는 찰라 버스 안에는 서있는 사람으로 가득차서 버스 입구에 서서 가야할 지경이었다. 거기다가 창문들도 꽉 닫아 노은 탓에 공기마저 희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10분을 콩나물 시루처럼 서서 가던 도중에 내 바로 앞에 앉아있던 학생이 의자에서 일어나서 내렸다. 기쁨과 왠지 모를 성취감에 사로잡힌 나는 그 자리에 재빨리 앉았다. 그리고 무난하게 버스가 출발하고 다음정거장에 멈추어 섰을 때였다. 지팡이를 쥔 할머니가 올라 오셨다. 할머니는 교통카드도 아닌 것을 버스 운전기사에게 보여주자 버스운전 기사가 웃으며 ‘안녕하세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내 앞에 섰다.

 그렇다. 이것 또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의 기나긴 교육을 통해 동방예의 지국의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자리를 비켜드렸다. 마침 방송에서 노약자와 임산부에게는 자리를 양보해주세요. 오직 아름답고 아름다운 우리나라만의 전통 방송 멘트가 흘러 나왔다. 할머니는 ‘아이구 젊은이 참 고맙구려 늙은 게 어디 멀리 가려고하니 힘이 드네.’ 라는 말씀을 하시며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나에게 설명하셨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동시에 미소와 함께 10분을 보냈다. 드디어 내릴 차례가 되자 입가에 화색이 돌며 할머니께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라는 건실한 청년으로서의 멘트를 보내며 버스에서 내렸다.

왠지 모르게 벌써부터 몸의 피로가 넘쳐나는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버스에서 내려서 쉬는 호흡은 정말 이토록 상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약속 시간 30분전 지금 당장 지하철을 타고 10분 안에 다음 4정거장을 지나서 10분 안에 버스를 타고 연극 장소까지 5분 안에 뛰어가지 않으면 지각이 되고 만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지하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교통카드로 지하철 게이트를 찍고 뛰어넘듯이 내려갔다. 그리고 지하철을 대기하였다. 뛰어왔던 보람을 느낄 수 없이 나랑 같이 버스에 내려서 천천히 걸오 온 학생이 내려오고 나서야 지하철이 도착하였다. 나는 왠지 모를 패배감을 품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그리고 카운트를 새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4정거장인데 보통은 2분에서 3분 사이에 한정거장을 지나니까 흠 8분 안에는 가야된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던 노선의 구간마다의 분단위로 시간을 이렇게 면밀히 체크해나가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결국 12분을 잡아먹은 지하철을 원망하며 다시 지하 4층이나 되는 지하철역을 미친 듯이 뛰어 올라갔다. 이것은 초등학교 국토 순례 이후로 느껴보는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고통이었다. 지하철역을 벗어나고 정류장에 서자마자 버스가 도착하였다. 나는 오늘 하루 중 가장 기쁜 마음으로 버스에 들어섰다. 게다가 버스 안에는 사람이 한 두 사람뿐이 없어서 앉을 자리가 넘쳐났다. 나는 태양빛이 잘 들지 않는 자리에 앉아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렇게 편하게 앉아서 갈수 있다니 기뻤다. 앞으로 15분 정도가 남았다. 처음에는 30분 전에 가서 기다리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해야겠다는 마음은 온데 간데 없어져버렸고 지금은 시간 안에만 가자는 일념하나만 머리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왜 버스가 앞으로 가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 정체다. 길이 막혀서 버스가 앞으로 진출을 하고 있지 못한 것이었다. 버스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나와 운전기사를 포함해 고작 4명인데 이렇게 답답했다.

그때였다. 문자가 도착하였다는 진동이 내 오른쪽 주머니를 자극하였다.

경록아 어디야?
나는 조금 있으면 도착해^^
빨리 갈께

갑자기 숨이 막혀오기 시작하였다.

아 ^^네 그래.
천천히와.

마치 내가 도착하기라도 한 듯이 답장을 보내버렸다. 이 버스가 멈추기까지 앞으로 3정거장 정도 남았다. 나는 앞으로 남은 시간은 10분. 이대로라면 늦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아저씨 죄송한데 여기서 문좀 열어주시면 안되나요?"

그렇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였다. 아 이렇게 달려 본 게 얼마 만인가? 병이 생기기전에는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매번 1,2등을 하여 손목에 도장을 찍고는 했는데, 정신없이 달리던 찰라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2분 남았다. 그래 이정도의 속도라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드디어 연극 극장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앞에는 그녀가 핸드폰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나는 다시 시계를 보며 1분남은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미친 듯이 뛰어가서 그녀 앞에 섰다.

학.......

거친 숨을 미친 듯이 그녀 앞에서 몸을 수 그린채로 쉬기 시작하였다.

"경록아? 괜찮아? 따....... 땀 좀 봐. 무슨 일 있으셨던 거야?"

그녀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귀를 적셨다. 하지만 왠지 모를 성취감과 안도감이 나를 기쁘게 하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서 그녀를 보자 저절로 웃음 지어졌다.

그리고는 왠지 모르게 서서히 눈앞이 깜깜하게 변하고 몸의 중심이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경록아!"